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7시가 채 안돼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⏋

소요산행 4-4칸에 타서 휠체어 석에 몸을 기댔다.

얼마전 사둔 시집을 다시 꺼내 읽었다.


     

   ⎾ 9to6 

사무실 안에서는 

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괜찮은건가, 

2년을 꽉 채울까, 그냥 그만둘까,

회사다니는 동안엔 해외여행을 안가고 착실히 돈을 모아 한방에 떠야지,

하다가도 몽골에 가고싶다, 태국에 가고싶다, 대만에 가고싶다, 미얀마에 가고싶다,

미국에 가고싶다, 캐나다에 가고싶다, 순천에 또 가고싶다, 부산에 가고싶다,

양구에 가고싶다, 산에 오르고 싶다, 자전거를 타고싶다, 망원동 카페에 앉아있고싶다,

오늘 저녁엔 끝나고 준똘이랑 산책을 할까, 자전거를 탈까, 피아노를 갈까, 카페에 갈까,

수많은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할까,할까,할까


이 질문들의 근본적인 꼬리이자 결론은

'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 걸까'

라는 물음이었다



바깥은 여름. 해가 질 생각을 않는다⏋

시집을 읽다 문득 차창을 바라보니 늦은 오후쯤의 햇빛이다.

미세한 오렌지빛 도시는 덜컹덜컹 천천히 또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.

생각해보니 이 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.

1. 창문이 의자칸보다 더욱 가까워질수 있어서 좋고 사람을 바라보고싶지 않을때는 등을 돌리면  된다.

2. 책을 읽다 눈 한숨 돌리면 바로 풍경이 보인다. 기차를 타고 여행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.

3. 모서리에 가만 있다보면 그 칸의 지배자가 된 느낌을 받는다.

4. 이쪽 구역에 있는 함께 서있는 사람들의 느낌이 왠지 모르게 좋다.

5. 서있지만 서있지 않는 느낌. 누워서 가는 느낌


108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다가

    ⎾초로의 지친 여자가

선명한 파란색 블라우스를 입고

두 병째 맥주를 마시고 있다⏌

라는 시 구절을 읽었다.

나는 오늘 선명한 파란색 셔츠를 입었고

순간 나는 (초로의 나이는 아니지만) 겨울 저편에 있는 여인이 된 느낌을 받았다.

파란색 블라우스라고 호명한 순간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. 시집 속에나 등장하는.

나는 오후 7시를 향해 달려가는 지하철 모서리칸에 서서 시집을 마주한 파란색 셔츠를 입은 여자였고 내 스스로의 눈에 띌 만큼의 사람이었다.

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 걸까라는 물음에 오늘만큼은 답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.

나는 선명한 파란색 셔츠를 입은 사람이고 싶다⏌


참조. 소요산행 모서리는 대개  ⏋의 방향이고 인천행 모서리는 ⎿방향이다. 


역에서 내려 집으로 오는 길.

오후 4시라고 착각할 만큼의 햇빛이라서 좋다.

길거리에는 한 아저씨가 홀로그램 그림을 홀로 팔고 있다.

양손에 들고 팔랑팔랑~~~흔드니 힙하게 발광하는 홀로그램들.

홀로그램 그림이라니! 완전 멋지잖아! 완전 90년대같아!

2장에 오천원. 살까 말까 고민했지만 왕왕 그렇듯 쫄보라서 접었는데 후회중.

왕 멋진 호랑이 두쌍이었는데


모서리를 좋아하고 파란 셔츠를 입은 사람이 오후 7시 10분에 길거리를 지나가다 홀로그램 그림을 발견했다는 일기.

이 글을 읽는 순간 당신은 모서리 마법에 걸릴것입미다⏌

미마먀머며모묘무뮤매먜메몌뮈므믜뫄미



 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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